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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중동전쟁 그리고 가자 지구(Gaza Strip) | 원인과 결과

knownlearn 2024. 5. 30. 12:21

지난해 10월 경 재개된 가자 지구에서의 분쟁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충돌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과거로 되돌아가서 '이팔 전쟁'의 시작부터 정리해보고자 했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시작된 이래로 발발된 네 차례의 중동전쟁과 가자 지구에서의 충돌까지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Israeli–Palestinian conflict)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둘러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발생한 분쟁의 총칭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20세기 중반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 속에서 시작되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주요하게 1948년-1993년 사이에 무력갈등이 빚어졌고, 전쟁의 장소는 대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그리고 레바논이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갈등입니다.

 

이 두 국가 사이에서는 종교, 영토, 역사 등 다양한 이유들이 분쟁의 원인으로서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토 분쟁은 '밸푸어 선언'으로 야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밸푸어 선언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면, 영국이 이스라엘을 건국하려는 유대인들에게 고향으로 되돌아가서 새로 나라를 건국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본래 거주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력으로 추방시킨 뒤에 그 땅을 유대인에게 양도하게 되면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밸푸어 선언 원본로스차일드 가문의 문양
Balfour Declaration, Rothschild Family

 

밸푸어 선언 (Balfour Declaration)

1917년 영국의 외무장관인 아서 밸푸어가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국가 수립을 약속하는 외교 선언입니다. 당해 11월 2일 아서 밸푸어가 이끄는 영국 외무성이 당시 유대인을 대표했던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아서 밸푸어의 서명이 포함된 편지를 공식적으로 보낸 겁니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있던 영국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유대계 금융재벌이었던 로스차일드 가문과의 약속을 통해 금융자본을 받게 된 겁니다.

그러나 이미 밸푸어 선언이 이루어지기 전인 1915년 10월에 헨리 맥마흔이 후세인-맥마흔 서한을 통해 전후 아랍인의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기로 약속했기에, 사실상의 이중계약이었고 이 선언은 유대인과 아랍세력의 분쟁을 초래하게 됩니다. 종국에는 이 선언이 근현대 중동의 역사를 뒤흔들게 됩니다.

 

 

밸푸어 선언이 발표된 이후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게 되고, 선언에 의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땅에 이스라엘인들이 차차 들어와 정착하게 됩니다. 약 2000년 전에 이스라엘인들이 살고 지내왔던 영토라고 하더라도 당장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아갈 터전을 잃게 되는 셈이었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영국에 그 책임을 묻지만, 1947년 영국은 1945년에 창설된 유엔에 문제를 떠넘기게 됩니다.

 

창설된 지 겨우 2년도 되지 않은 유엔은 '유엔-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를 신설하고 조사에 착수합니다. 그리고 그 해에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을 발표하여 전체면적의 56.47%는 유대 국가, 42.88%에는 아랍 국가를 세우되 0.67%에 해당하는 예루살렘은 유엔이 관할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할 결의안이 발표될 당시 팔레스타인에는 팔레스타인예 아랍인이 약 80%, 유대인은 약 10% 정도가 거주하고 있었기에 인구 비율과 관계없이 영토가 나뉘었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중동전쟁 (Arab–Israeli conflict)

 

 

제1차 중동전쟁 (이스라엘 건국전쟁)

여하튼, 1947년에 팔레스타인의 영토가 반으로 나뉘자마자 1948년 5월 14일,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건국이 선포됩니다. 다른 중동 국가 입장에서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지게 되어 1948년에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중동전쟁이 독립전쟁인 셈이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지게 된다면 지난 2000년 간 그래왔던 것처럼 국가가 없는 민족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1948년에 시작된 제1차 중동전쟁은 미국의 지원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1949년 이스라엘의 압승으로 막을 내립니다.

 

미국 내에서 유대인의 영향력이 거대했던 이유도 짚고 가야 하겠습니다. 1947년 워싱턴에서 조직된 유대인 최대의 로비단체인 AIPAC(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막대한 자본력을 갖추고 있던 약 2%의 유대인들이 미국의 정계와 재계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가 오히려 미국으로의 유입을 부추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영향력은 이스라엘 건국에 핵심적이었죠.

 

제2차 중동전쟁 (수에즈 전쟁)

1956년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중심으로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합니다. 전쟁기간은 1956년 10월 29일에서 1957년 3월까지입니다.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 이집트를 공격하였기에 이집트 측에서는 삼국 침략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에 거의 개입하지 못한 형국이었고, 이스라엘군이 단독으로 이집트군을 압도합니다. 이스라엘 국경이 시나이 반도 방향에서 시작된 공세가 전선 중앙부와 남부 방향의 돌파로 인해 전세가 결정되었습니다. 1956년 11월 5일,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고 시나이 반도의 최남단까지 점령하여 이집트의 완패가 선명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이 미국과의 협의 없이 전쟁을 벌였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서 압박을 넣기 시작하였고, 핵전력을 과시하고자 하였던 소련도 이집트 편을 들며 핵폭격 위협을 시전 합니다. 미국은 소련이 무력을 사용해도 지원하지 않겠다, 즉 NATO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빼버리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가합니다. 결국 그 해 11월 유엔의 중재로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철수하고, 1957년 3월 이스라엘군이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전쟁은 종결되고 이집트의 외교적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어두운 밤에도 지속되는 공격
밤 중의 공격

 

제3차 중동전쟁 (6일 전쟁)

제3차 중동전쟁, 1967년 6월 5일부터 10일까지 일어난 전쟁이기에 '6일 전쟁'이라고도 불립니다. 6월 5일 아침 8시 50분, 이스라엘은 레이더 기지의 교대시간을 노려 사막에서부터 1편 대당 4기 밀집 초저공비행을 하며 이집트 방공망을 우회하여 주요 공군 기지들로 침투하는 데 성공하였고 기습 폭격을 가합니다. 약 3시간에 걸친 폭격으로 이집트 공군은 450여 대의 항공기 중 300여 대를 상실하고 공군 기지와 레이더 기지를 모조리 잃게 됩니다. 이집트 공군력의 80%를 격파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를 상대로 선제 공격을 감행한 후 대승을 거두어 엄청난 영토를 획득합니다. 이 지역의 패권은 이스라엘이 쥐고 있다고 각인시킨 전쟁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공군의 전술로 인해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더구나, 제3차 중동전쟁으로 인해 독재정권들이 국민들의 신망을 잃게 되자 세속적인 아랍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퇴조가 찾아옵니다. 아랍 사회주의와 아랍 민족주의가 잦아들게 되면서 그 자리를 채운 것이 바로 '이슬람주의'였습니다. 

 

제4차 중동전쟁 (욤 키푸르 전쟁)

1973년 10월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기습침공하며 발발한 전쟁입니다. 전쟁 기간은 10월 6일부터 25일까지로 제3차 중동전쟁을 제외하고서 다른 중동전쟁들에 비해 짧은 편입니다. 전쟁이 일어난 당일이 '욤 키푸르'라는 유대교 전통의 속죄일이었기 때문에 이로서 지칭하거나 '10월 전쟁', '라마단 전쟁' 등으로 불립니다. 

 

'욤 키푸르'는 이스라엘의 대규모 휴일 기간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휴가를 떠나 경계가 느슨해진 상태였습니다. 이를 틈 타, 이집트와 시리아 연합군의 동시다발적인 기습이 시작되었고 이 외에 이라크, 요르단,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도 지원군을 보내게 됩니다. 

 

이전 세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이 모두 이스라엘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의 공백이 있었기에 초반에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미국은 전선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12-13일 사이에 영국에 부탁하여 휴전 중재를 시도하고 군수물자를 공급합니다. 이스라엘 지상군은 10일경부터 반격에 성공하기 시작하였으며 결국 역전승을 거둡니다. 

 

 

전쟁 중 팔레스타인 국기를 든 남자
팔레스타인 국기를 든 남자

 

 

 

가자-이스라엘 분쟁

 

가자-이스라엘 분쟁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일환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가자 지구(Gaza Strip)에서 발생한 분쟁을 일컫는 것이죠. 2006년에 처음 가자지구에서 갈등이 빚어졌으며, 가자지구에서 집권하고 있는 급진강경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정부 간의 전쟁을 의미합니다. '가자 전쟁'으로도 불리는 가자-이스라엘 분쟁은 2006년을 시작으로 2008년, 2012년, 2014년, 2021년, 2022년 그리고 최근의 전쟁으로 귀결되었던 2023년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2008년 12월 27일 - 2009년 1월 18일 (제1차 가자전쟁)

이스라엘이 2008년 12월 27일 오전 11시 30분에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최소화한다는 명목으로 가자 지구를 공습합니다. 이후 2009년 1월 18일 이스라엘이 처음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하고 그로부터 약 12시간 후에 하마스 측에서 1주일 간의 휴전을 선언하면서 일단락됩니다. 오슬로 협정 이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립 이후에 벌어진 가장 큰 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2년 11월 14일 - 11월 21일 (제2차 가자전쟁)

아랍의 봄이 잦아들 무렵인 2012년 11월 14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 지구 하마스 군부대 사령관인 아흐마드 자바리가 살해되면서 시작된 충돌입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령부가 트위터를 통해 선전포고를 합니다. 

 

하마스의 반격도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월등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측의 손실이 더 큰 충돌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최소 139명이 사망하고 최소 900명이 부상당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80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절대적인 수의 차이도 중요하지만, 팔레스타인인 사망자의 절대다수가 여성과 어린이를 상당수 포함한 민간인이라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도로 위의 군인들
도로 위의 군인들

 

 

2014년 7월 8일 - 8월 26일

2014년 6월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인 10대 3명이 납치되어 살해된 사건을 빌미로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비난하면서 시작된 충돌입니다. 그 해 7월 8일, 이스라엘 방위군이 가자 지구에 프로텍티브 에지 작전을 펼칩니다. 이 작전으로 인해 최소 팔레스타인의 민간인 572명이 사망했으며, 약 3,600명이 부상을 입게 됩니다. 반면 이스라엘 측은 20명이 사망하고 108명이 부상을 입게 됩니다. 

 

2021년 5월 6일 - 5월 21일

2021년 5월 6일, 동예루살렘을 점거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6 가구의 퇴거에 대한 이스라엘 최고 법원의 결정을 두고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가 격발 되며 이번 사태가 시작됩니다. 5월 10일,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오후 6시까지 보안군을 철수시키라는 최후통첩을 보내지만 이스라엘은 그에 대응하지 않습니다. 그에 따라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는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하기 시작했고, 이스라엘 또한 가자 지구에 대한 공습을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5월 16일까지 학교 40개 동, 병원 4개 동 등이 최소 부분적으로 파괴되었고 19개의 의료시설이 폭격을 맞게 됩니다.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약 4,360발의 로켓을 발사합니다. 그중 680발이 가자 지구 내에 떨어졌고, 이스라엘의 인구 밀집지역을 향해 발사된 로켓의 90% 이상이 아이언돔에 의해 요격됩니다. 이스라엘은 공중, 육지, 해상을 대상으로 약 1,500번의 공격을 감행합니다. 

 

휴전에 대한 목소리는 5월 13일에 이미 하마스에 의해 처음 제안된 바 있습니다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를 거부합니다. 5월 18일, 프랑스는 이집트와 요르단과 함께 유엔 안보리에 휴전을 위한 결의안을 제출하였고, 21일이 되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휴전협정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2021년 6월 16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방화 풍선을 발사하고 이스라엘 공군은 가자 지구에 수차례 공습을 감행하여 보복함으로써 휴전협정이 깨어지게 됩니다. 7월에도 팔레스타인이 또다시 방화풍선을 날리게 되고, 8월에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겨냥해 로켓포를 발사합니다. 이스라엘 측은 팔레스타인의 인화성 풍선 공격에 대응하여 가자 지구 내 하마스의 무기공장, 저장소 등 4곳을 전투기로 폭격합니다. 

 

2022년 8월 5일 - 8월 7일

이틀간 지속된 가자 지구에서의 충돌입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 지구에서 활동하는 무장조직인 지하드를 대상으로 한 것이며, 2021년 당시 이스라엘에 대한 로켓포와 미사일 공격을 주도했던 지하드의 지휘관 여러 명을 사상했다고 발표합니다. 지하드는 하마스와 함께 가자 지구에서 활동하는 무장조직으로 하마스보다 더 이스라엘에 강경하고 적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가자 지구에 약 147회의 공습을 했으며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약 1,100발의 로켓을 발사합니다. 사흘간 이어진 충돌은 8월 7일 이집트의 중재 아래 양측이 휴전에 합의하며 마무리됩니다. 

 


 

여기까지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간략한 개요였습니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자 지구에서의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분쟁은 다음 포스팅에서 별도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오래전부터 계속된 갈등 관계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뿐만 아니라 여러 피해를 봐왔습니다. 이 갈등이 어떻게 마무리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