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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은 하향세, 열등감은 상승세로 만든 '사소한 소식'에 대한 분석

knownlearn 2024. 4. 12. 00:11

 

그 소식을 듣고 왜 때문인지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이뤄내지 못한 것을 그 친구는 나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나의 자존감에는 조금의 틈이 생겼다. 열등감이 발동했고 그 열등감을 다시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 

 

참고로 이 블로그의 제목은 '사회과학계열 박사과정생의 현실적 일상'이지만 나는 아직 박사과정에 입학하기 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박사과정 모집에 아직 지원조차 하지도 않았다. 만약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된다면 이 블로그가 계속 이어질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제목을 바꾸거나 콘텐츠를 아예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버릴 예정이다.

 

 

자존감은 하향세, 열등감은 상승세로 만든 '사소한 소식'에 대한 분석
[이미지 출처: pixabay]

 

 

나는 지금 위와 같은 상황이다. 그러한 상황인데 오늘 누군가를 통해서 내가 석사과정 중에 얼굴만 알고 있고 이야기는 나눠본 적 없는 친구가 박사과정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리고 자대 출신이다. 나는 타대 출신이고, 학부 졸업 후 일을 하다가 석사과정에 진학했고, 석사 졸업 후에도 몇 년간 일을 하다가 다시 박사과정에 진학하고자 하는 경우이다. 그러다보니 학부와 석사과정 이후 공백 없이 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친구들과는 최소한 몇 년간의 갭이 생겨난다.

 

그러한 경우의 친구들이 부럽지 않다고 말할 순 없다. 나이가 어릴수록, 인생의 여러 순간들을 지나치며 겪게 되는 더한 어려움을 모를수록 박사과정이라는 힘든 여정을 해치워가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약 나에게 20대에 석박사과정을 모두 끝낼 기회가 주어진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할 것이다. 교수님들이 보시기에도 중간중간 일을 하면서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보다는 이어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더 성실해 보이지 않으려나 싶기도 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 속을 감싸 안고 있었고, 이 생각들을 덜어내어 정리하지 않는다면 뭉터기진 생각 덩어리가 그대로 남아 앞으로의 나를 망가뜨리게 할 것이 뻔했다. 그리하여 내가 왜 부럽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최대한 면밀하게 분석해 보기로 했다. 

 

 

 

 

 

① 부러움의 이유

 

■ 가장 먼저 부러웠던 것은 나이였다.

 

20대에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라면 힘든 시기가 올 때 휴학을 하든, 자퇴를 하든 간에 아직 젊다는 이점이 있다. 그리고 박사과정을 마친 후에도 아직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일 것이기 때문에 아주 젊은 나이에 박사가 되어 이후의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을 먼저 갖출 수 있게 된다. 만약 연구가 적성에 맞지 않아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려 할 때에도 상대적으로 적은 나이이기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부담감을 덜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만 나이가 통용이 되고 이전보다는 나이에 대한 경계가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서는 일정한 나이에 도달하게 되면 그것에 맞추어 행해져야만 하는 것들에 대한 압박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경제적인 독립과 결혼 등이다. 최대한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악의 없이 건네오는 여러 질문들 속에서 그러한 다짐이 알게 모르게 깨어져 버리기도 했다. 다수가 그리 생각하는데 나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고찰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하고 말이다.  

 

상상할수록 더 최악인 상황은 이것이었다. 물론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더 많으신 동기들도 있을테지만, 만약 내가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보다 무언가를 잘 해내지 못했을 때 교수님들로부터 듣게 될 짓궂은 말들은 도무지 적응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이미 석사과정 중에서도 욕지거리는 아니더라도 학생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여러 교수님들을 만나봤던 터였다. 박사과정에 들어가서도 나와 누군가를 끊임없이 비교할 교수님들과 주변 사람들이 벌써부터 걱정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차라리 막내로 입학해서 못해버리면 사람들에게 '그래도 어리니깐 상대적으로 배울 시간이 더 많으니 괜찮지'란 생각이 먼저 들게 만들 수 있는데, 슬프게도 난 이미 적지 않은 나이라 그런 인식을 사람들에게 선사해 줄 수 없다. 

 

 

 

 

■ 그 다음으로 부러웠던 것은 자대 출신이라는 타이틀이었다. 

 

내가 느끼는 대한민국은 뼛속까지 학연, 지연, 혈연이 판치는 인맥 사회다. 이걸 고쳐보겠다고 소수의 정치인들이 용을 써봤지만, 소수가 다수를 이길 힘은 부족한 것이었겠지. 게다가 인맥으로 이어진 관계 속에서 많은 이들이 충분한 혜택을 누렸고, 혜택을 맛본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들이 그 혜택을 다시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인맥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명실공히 그 명줄을 이어오고 있었고, 학교는 인맥사회의 좋은 예시이다

 

굳이 내가 무언가를 덧붙이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라고 본다. 어쩌면 인맥 시스템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어 문제시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법망에서 벗어난 것도 아닌데 무엇이 문제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본인들이 막상 인맥 시스템의 피해자가 된다면 그리 말할 수 있을까? 본인의 인맥이 없고, 있는 인맥마저 힘이 없어 자신의 부모와 자식들이 좌절을 겪는 상황이 온다면 이를 쿨하게 넘길 수 있을까? 아쉬움과 분노가 잔존하게 되지 않을까?

 

학부 때부터 자대 출신인 학생들이 대학원 입시과정에서 더욱 유리한 입지에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증거를 대서라도 해보시라. 내가 들은 이야기들을 총정리해보면 학교 입장에서 자대 출신을 뽑지 않을 이유가 거의 없다. 정말 꼴통인 학생이 지원하지 않는 이상에야 말이다. 자대 출신인 학생이 상대적으로 능력치가 떨어져도 뽑지 않는다면 학교 얼굴을 먹칠하는(되려 학교가 자기 무덤을 파는 꼴이 되므로) 뽑으려고 한다든지, 자대 출신이 해당 학과의 분위기에 익숙하다든지 등의 이유를 들었다. 자대 출신 밀어주기는 당연히 들어보았고. 학교 밖에 있으면 잘 들리지 않던 이야기들이 학생으로서 혹은 직원으로서 그 학교에 몸 담았던 사람들을 통해 우수수 쏟아져 나왔었다. 

 

타대 출신인 나로서는 이번 입시에 대한 불안감이 결코 작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자대 출신인 그 친구 소식을 듣고 나서 나는 무사히 입학할 수 있을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타대 출신이라면 알게 모르게 텃세도 경험하고 무시도 받는다는데 이건 직접 경험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② 사고의 전환

 

사고의 전환을 시도해본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내가 거대한 사회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될 대로 돼라'라는 마음이 가장 크긴 하다. 지원자의 수가 적어서든, 운이 좋았든 간에 입학을 해야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기에 박사과정에 입학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내가 자대 출신 학생들보다 결코 나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며, 설사 그들보다 더 나은 스펙과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입시과정에서 고배를 마실 이유는 넘치고 넘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나이를 먹고 언젠가 인맥이라는 요인에 휘둘리지 않을 힘을 가지게 된다면, 그 때에 공정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면 된다. 

 

나이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없길 바라지만 혹여 그런 일을 겪더라도 그것이 나의 잘못이 아님을 확실히 알고 있자. 나이와 무관하게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온 것이니까 말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방황하며 취업을 택했고, 석사과정을 졸업한 이후에도 방황을 하느라 취업을 택한 나였다.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마음을 먹고 이제야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나에게 '그 나이에 넌 도대체 뭘 공부한 거냐'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그렇게 나이가 많은데 왜 누군가의 인생을 곧이 곧대로 이해할 능력이 없느냐'라고 (속으로) 물어볼테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의식적으로 사고의 전환을 시도하고, 나 자신을 방어하면서도 그것이 올바른 방향인지 계속해서 고민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만약 정신적인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이마저도 해야겠다는 힘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나는 또다시 잘못된 생각의 고리로 빠져들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렇게 여유로울 때에 사고의 전환을 시도하는 습관을 길러서 무의식적으로라도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나'의 자존감과 열등감을 건드리는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를 돌아보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생각을 어떻게 이겨내면 좋을지 풀어보는 습관을 가져보시길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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