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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으로 사선을 넘나 들었던 석사과정 첫 학기, 그 탈출과 극복의 기록

knownlearn 2024. 4. 19. 18:50

 

이번 포스팅에서는 필자가 석사과정 중일 때 겪었던 경험을 조금은 더 자세하게 털어놓고자 한다. 이미 앞선 포스팅에서 필자가 석사과정을 보낼 당시,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었음을 밝힌 적이 있다. 어떠한 형태로 열등감이 발현되었는지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고, 만약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본 포스팅을 읽는다면 또 하나의 전우로서 힘이 되기를 바란다.

 

 

열등감과 자존감은 상대적이다 ① (작성동기, 열등감의 예시/형태)

 

열등감과 자존감은 상대적이다 ① (작성동기, 열등감의 예시/형태)

고찰의 첫 번째 주제로서 대학원생이 가지는 열등감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대학원생이라고 적었으나, 어디 열등감이 작용하는 범주가 학교뿐만이랴. 회사이든, 집이든 학교가 아닌 곳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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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과 자존감은 상대적이다 ② (자존감 상승과 회복에 도움되는 방법)

 

열등감과 자존감은 상대적이다 ② (자존감 상승과 회복에 도움되는 방법)

지난번 포스팅에서 열등감과 자존감을 작성하게 된 동기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 열등감의 형태를 살펴보았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이전 포스팅을 먼저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이번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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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암흑의 시기

 

그 때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간단히 말하면 그때는 '암흑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생각뿐만이 아니라 신체적, 물리적으로도 빛을 꺼려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 때로부터 몇 년 정도 흐른 지금이니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때의 시작은 내가 대학원에 들어간 첫날이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야, 내가 그간 여기까지 오기 위해 힘겹게 힘겹게 쌓아 올린 것들을 다른 동기들은 너무나도 쉽게 얻어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시골 깡촌에서 서울로 올라와 제대로 된 외국어 교육을 받아보지도 못한 나였지만, 비싼 학교에 들어온 동기들은 달라도 태초부터 달랐다. 재미교포/외국인의 비율이 과반수를 넘어가고, 재미교포가 아니더라도 혹은 국적이 대한민국이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부터 외국에서 수학하거나 국제학교를 졸업하여 영어와 제2외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사람들이 바로 내 동기들이었다. 교포라고 해서 모두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높은 확률로 그들은 부자인 집안에서 나고 자라 먹고사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부러움의 원인

 

수업시간마다 책상에 올려둔 가방은 샤넬, 프라다, 에르메스, 디올, 입생로랑 등이었고, 풀메이크업과 명품 브랜드나 들으면 알만한 고가 브랜드를 착용하고 왔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아니다 보니 '공부를 하러 오는데 이렇게까지 공들여 올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처음 했을 뿐이다. 그들이 가진 고가의 제품 중에서도 나의 취향을 저격하여 갖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나는 엄연히 그것들을 쉽게 사지 못한다. 그러니 내가 부러운 것은 명품 그 자체라기보다는, 명품에 해당하는 제품의 경제적 가치를 어려움 없이 거뜬히 소비해낼 수 있는 여유였다.

 

수많은 부러움들 중에서 나의 자존감을 그렇게도 갉아먹었던 것은, 학업적인 능력면에서의 차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가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공부야말로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었다. 간혹 공부를 통해 장학금, 사례비 등의 경제적인 보상이 있었기 때문에 공부라는 것은 나에게 돈을 벌어주는 수단으로도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내 동기들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와 제2외국어는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으니, 영문 문헌이 많거나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그들의 기개를 나고 펼치기에 바빴다. 외국에서의 다양한 교육, 인턴경험 등을 섭렵한 그들은 엄청난 자신감에 휩싸여있는 듯했다. 그들은 좋은 토양 속에서 좋은 씨앗을 심고 좋은 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나는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토양 속에서 씨앗 하나도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 첫 수업부터 영어로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 인터넷을 뒤져 몇 문장을 곱씹고서야 떨리는 목소리로 뱉어낸 게 전부였다. 첫 단추가 틀어졌다. 내가 이 수업을, 이 학과를, 이 학교를 감당해 낼 자신이 없어졌다. 대학원에서의 첫 수업부터 암흑의 시기에 들어서기까지 늘 그랬듯 나름의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매번 영어로 된 문헌 하나 이해하기가 너무 벅찼고, 그 수업에 앉아있노라니 죄다 이해되지 않았으니 학비를 허공에 날리는 것 같은 기분에 우울해지기 일쑤였다.

 

암흑의 시기는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서서히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결관리가 이루어지니 어떻게든 수업은 나갔지만, 간혹 수업에 빠진 적도 있었고,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니 제대로 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색만 맞추기 위한 수준의 '헛'공부를 했다.

 

거기에다가 그 당시 자주 놀았던 서울 친구들 중 두 명이 (가정환경이 불우했던지라) 아주 어릴 적부터 오랜 기간 동안 마음의 병을 앓아왔고, 나는 친구들이 그들의 열등감에 기반한여 나에 대해 내뱉는 무례하고 부정적인 말들을 건실한 방패 하나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참는 것을 정신적으로 힘든 친구들을 이해하는 것으로 동일시했다. 친구들이 원하는 건 자신들보다 더 잘난 학교에 들어간 나를 틈만 나면 여기저기 깎아내리는 것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부정하려고 했었다.

 

정말 악재가 아닐 수 없었다. 친구들은 나를 진심으로 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주 고질적인 그들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그들이 가진 고민의 크기가 이미 충분히 컸기 때문이다. 예민하지 않던 내 눈에도 학벌, 성적, 외모 등 열등감의 지표가 될 수 있는 소재만 나오면, 친구들의 표정이 썩어가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니 나는 친구들을 위해서라도(그 당시에는 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더 작아지고 숨어야 친구들이 되려 나의 존재로 인해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고, 머리로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느샌가 나는 작아지고 있었다. 무례한 친구들이 내뱉는 나에 대한 터무니없는 평가와 나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2. 살아야 하는 이유

 

안 그래도 학교에서의 삶은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데, 학교 밖을 벗어나 만난 친구들은 왜 나한테 이럴까. 나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이끌어줄 등대지기가 되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상태였기에 교내심리상담소를 찾았다. 이모같이 정겨운 상담사님과 매주 시간을 갖고 매일매일의 내 상태를 기록했다. 기록을 지속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결국 상담사님도, 아무리 친한 친구도, 가족도 나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고, 나 자신만이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특출 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글이 도움이 되기는 했으나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문서프로그램으로 A4 용지가 빽빽하도록 타자를 쳐내도, 글로 다 뱉어내도 답답한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정말 심각했던 암흑의 시기 절정에는 매일 밤을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지금 생각하면 명확한 이유를 설명해낼 수 없다. 이 학교에서 잘 해낼 자신이 없기에 희망이 부재했던 것과 내가 못나서 아무도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 것이란 절망이 주된 이유였다. 참을 수 없이 괴로운데 어떻게 앞으로 살 수 있을지, 이럴 바엔 사는 것보단 죽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햇빛을 보기 싫어서-어두운 나랑 밝은 햇빛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낮에도 기숙사 방 창문에 커튼을 쳐두고 어둡게 살았다. 그렇다고 정작 죽기 위해 한 행동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나아지려고 건강하게 먹고 운동을 꾸준히 했었다. 기억나는 건 단기적인 우울증 증상 때문에 식욕이 너무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세 달 동안 몇 킬로가 빠졌었고, 탈모 증상도 있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컸던 탓인지 나는 극적으로 나아졌다.

 

마음이 아프다던 두 서울친구와는 절교를 했다. 나에게 무례했던 친구한테는 나도 제대로 무례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차단을 했고, 다른 한 친구는 그냥 서서히 멀어지다가 결국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차단을 했다. 학업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목표를 수정하여 대학원에서 진지하게 학문을 학문으로 접근할 생각일랑 버리고 졸업만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암흑의 시기를 교훈 삼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나간 셈이었다.

 

그때에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몰랐다. 지금도 모른다. 다만, 그렇게 죽는 것은 옳지 못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고자 나아지려 하였던 것이다.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중학교 때부터 성인이 된 현재까지도 그 답을 찾고 있지만, '사람이 왜 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내기도 전에 사람이 반드시 죽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과는 거리감이 있다.

 

 

 

 

 

3. 나는 아직도 부러움을 부러워하는 흙수저다.

 

암흑기 이후 잘 살아오더라도 간혹 내가 염원하는 것이 너무나도 간절한 나머지, 그것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을 주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온다. 학교가 아닌 회사에 있으면서도 '저 선배 진짜 동안이다(=나도 동안이었으면 좋겠다).' '저분 근육이 멋있다(=나도 몸 만들고 싶다).' '저분 영어 잘한다던데(=나도 영어 잘하고 싶다)' 등 많은 순간을 부러움으로 채운다. 부러워하다 보면 계속 부러워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부러운 생각을 끊어내야만 한다.

 

내가 만났던 대학원생들 중 적지 않은 비율이 모두 석사 혹은 박사과정 중 어느 때에 힘든 시기를 맞이했다. 과제든, 시험이든, 프로젝트이든, 졸업논문이든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한계를 맞이할 때의 현실자각 타임은 그들에게 막막함을 주었다. 단순히 정신적으로 힘든 것은 모양새라도 나아 보일지 모르겠다. 내가 들은 최악의 사례는 스트레스로 인해 위장에 무리가 가 피를 토했다는 어느 동기의 이야기였으니까. 지병이 스트레스로 악화되어 입원한 사례도 들었으나, 내가 모든 대학원생들의 인생을 알지 못하니 분명 더 최악의 사례도 있을 것이다.

 

 

열등감으로 사선을 넘나 들었던 석사과정 첫 학기, 그 탈출과 극복의 기록
'우리네 삶은 주관적이며 상대적이다.'

 

 

사고전환

 

내가 원하는 것을 쉽게 얻거나 이미 가지고 있는 상대를 만난다면, 수고로움을 덜어낸 그 상대가 부러워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럴 땐 상대와 나는 독립적인 개체라는 점을 나 스스로에게 분명히 상기시킨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같을 수 없고 유일무이하며, 나와는 다르게 태어나고 자란 상태에서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것이니, 비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내가 그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부럽고도 아쉽기도 한 묘한 마음이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몫이니 괜스레 쓸데없는 감정과 얽히지 않으려 해 본다. 어쩌면 나 자신은,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다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피곤하다며 하루 중 상당시간을 누워서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고, 출퇴근시간에도 멀미가 난다는 이유로 책이 아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자기 계발에 있어 진실된 태도를 견지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쉽게 얻어지는 만큼, 쉽게 잃는다는 건 이미 몸소 체험한 것이니 더 성실하게 살고,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면 적어도 일말의 후회는 없지 않을까? 열등감에서 벗어나 미친 듯이 노력하고 몰두한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면, 그 어느 것도 부럽지 않은 순간이 올 것 같은 느낌이다. 자신의 한계는 스스로가 결정짓는다는 말을 역으로 생각해 본다면, 나 스스로가 한계를 뚫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체에 '불가능'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는 것이니까. 노력하고 몰두하는 나를 다시금 만날 준비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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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식을 듣고 왜 때문인지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이뤄내지 못한 것을 그 친구는 나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나의 자존감에는 조금의 틈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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