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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과 자존감은 상대적이다 ① (작성동기, 열등감의 예시/형태)

knownlearn 2024. 4. 4. 00:21

 

고찰의 첫 번째 주제로서 대학원생이 가지는 열등감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대학원생이라고 적었으나, 어디 열등감이 작용하는 범주가 학교뿐만이랴. 회사이든, 집이든 학교가 아닌 곳에서도 열등감은 작동하고 폭주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학교라는 장소에 차별점을 두어 학교 안에서만 발산되는 열등감의 예시와 그 형태를 알아가 보고자 했다. 그리고 열등감과 깊은 관계에 놓인 자존감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열등감과 자존감은 상대적이다 ① (작성동기, 열등감의 예시/형태)
[그림 출처: pixabay]

 

 

 

 

①  왜 열등감과 자존감인가?

 

내가 왜 열등감과 자존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먼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고찰의 첫 번째 주제로 이것들을 선정한 당위를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하게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은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나는 최근에 끝마친 석사과정 전후로 누군가의 자살 소식을 몇 차례 접하게 되었는데, 그 누군가가 바로 대학원생들이었다. 그들이 남긴 유서 내용이 핵심이 네이버 포털의 기사에 공개되었는데 '공부가 힘들다', '취업이 힘들다'는 말들이 적혀 있었다고 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고 든 생각들을 그냥 떠나보낼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도 석사과정 중의 생활이 평탄치만은 않았었다. 10대 시절 내내 광역시도 아닌 지방도시에서 자라 서울로 오게 된 대학원이었다. 그런데 서울 사람들은 왜 이리 번쩍번쩍한 지... 외적으로도 부족해 보이지도 않는데 내적으로도 여유롭고, 심지어는 능력조차 탁월했다. 알고 보니 어릴 때부터 유학을 다녀오거나, 해외에서 태어났거나, 국제학교를 다녔거나, 외고와 자사고, 과학고를 나왔다는 등 수준 높은 교육을 일찍이부터 경험한 친구들이었다. 그 말은 즉슨, 좋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갖춘 집안에서 태어났음을 의미했다.

 

물론 모든 친구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동기들이 내가 이름만 들어보았던 명품백을 아주 흔하게 들고 외제차를 끌었다. 연예인이 사는 아파트에 산다는 누군가의 이야기, 클럽에서 몇 백만원, 천만 원을 태웠다는 등의 경험담들이 들려왔다. 어릴 적부터 시골에서 자라 넉넉지 못한 환경에 익숙한 나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드라마와 영화에서만 보던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놓여 있었다. 경제적 풍요를 누린 그들은 학업면에서도 나보다 월등했다. 그렇게 석사과정을 시작한 첫 학기만에 나의 자존감은 인생 역대급으로 바닥을 쳤고, 열등감은 극대화되어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 이 10글자를 타이핑하는 몇 초만에 눈가는 촉촉해진다. 나는 내가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여러모로 능력이 부족한 내가 죽어도 어차피 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말이다. 가족에게도 친한 친구들에게도 차마 털어놓지 못했다. 괜히 내 심각한 고민을 꺼냄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을 전염시키기 싫었다. 의학적으로 진단받지는 않았지만, 일시적일지라도 대인기피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도의적으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도 동시에 들었기에 학교 내에 있던 심리상담센터를 찾았고, 일시적인 우울증 증상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괴롭다고  한달 내내 매일 밤을 빠지지 않고 울어재꼈으니. 

 

그 당시에 내가 느끼던 괴로움은 죽음이어야만 끝나는 것이었다. 상담사님을 제외하고서 그 누구와도 대화를 해도 (설사 겉으로는 크게 티는 안났을지언정)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죽지 않았기에 이런 글도 쓰게 되는 것이겠지만,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절망스럽고 괴로웠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나 현생이 너무 힘들어 '열등감'이나 '자존감'을 검색하여 여기까지 흘러 들어온 대학원생인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써보고 싶었다. 

 

 

 

 

 

②  열등감의 예시/형태

 

어찌저찌 첫 학기의 소용돌이를 가라앉히고 나니, 주변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생각외로 열등감에 휩싸여있다는 것을 나는 왜 알지 못했을까.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찍고 심리상담을 받던 몇 개월의 시간을 거치며 사고방식이 다시 세팅되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고, 어렴풋이 느꼈던 주변인들의 모습이 열등감이었음을 나의 경험을 통해 제대로 인지하게 되었다.

 

과거의 나 자신은 열등감에 쌓여있었지만 그 감정들이 그저 '나의 부족함으로 인한 부러움과 질투'라고 알고 있었고, 전혀 열등감이나 자존감의 이름을 붙일 것이 아니라고 보았던 것 같다. 최근 몇년 사이에 열등감과 자존감의 키워드가 널리 알려진 점을 감안한다면, 그 이전의 시기에는 내가 그것들에 대해 무지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자존감이 알려졌기에 과거보다 현재 시점의 눈으로 열등감을 분류하여 보기가 용이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과거로 돌아가 나의 열등감을 되짚어 보겠다. 학교에서의 나의 열등감은 시기와 정도에 따라 달랐지만, 다음과 같은 모습들로 발현되었다. (※ 절대로 열등감의 모습을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님을 사전에 밝힌다.)

 

 

예시

 

조교, 프로젝트 등 여러 기회를 두고 (애초에 부족한 내가 뽑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지원하는 행위 자체를 거부
지원하여 선발되었을 경우에는 나 자신의 능력으로 뽑힌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과대평가, 지원자 수 미달 등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이라 생각
주변에서 나에 대해 칭찬할 때마다 그들이 나를 연민하거나 위로하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 
나보다 무언가를 잘하는 학생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나는 그들처럼 될 수 없다고 체념하고 좌절
그들과 될 수 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는 가졌지만, 그들이 가지지 못한'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그들에 대한 뒷담화에 개입
나보다 못하는 학생들이 있더라도 그들은 일시적으로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며,
본래 가진 능력은 당연히 나보다 월등할 것이라 생각
애매하게 못하는 게 아닌, 누가 봐도 못하는 학생들을 보고 안도감을 느끼거나 속으로 무시하는 마음 탑재

 

 

나에게서 보여진 열등감의 대표적인 모습은 이 정도이다. 이 외에도 분명 다른 형태의 모습들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보다 더 악질적인 형태로도 가능할 것 같은데, 예를 들면 누군가를 시기질투한 나머지 교수님께 받은 지시사항을 고의로 알려주지 않는다든지, 상대가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유하지 않는다든지 말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미디어에서 자주 노출되어 쉽게 상상이 가능하지만, 실제 발생사례로서 간간이 귀에 들리는 것을 보니 아예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게 민폐를 끼칠 정도의 열등감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가졌던 열등감 중에서 가장 별로였던 것은 남을 깎아내리기 위한 목적의 뒷담화였다. 이는 내가 굳이 주도하지 않더라도 다른 타인에 의해 쉽게 개입되기도 했다. 뒷담화를 시전 하면서 내가 부러워하는 누군가를 깎아내리면서 '내가 잘나다고 생각한 그 사람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일종의 죄책감 또한 같이 들었다. 그 행위가 옳지 않음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부러워하는 누군가가 나를 괴롭힌 것도 아니고 그 어느 방면에서 피해를 끼친 것이 아닌데도 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현타가 오기도 했다.  

 

 

 

 

세상에 나보다 가진 것이 많고 잘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을 깎아내린다고 해서 현실에서 달라지는 건 어차피 없었다. 그들은 그들 그대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뿐이고, 그들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만 커진 내가 남을 뿐이었다. 그들과 적대관계에 있어서 좋을 이유도 없으니 더더욱 남을 깎아내리는 생각은 그만두어야 했다. 웃긴 건 말이다, 낮은 자존감은 객관적 혹은 주관적인 지표로 보았을 때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많은 그룹 속에서 나 자신을 오만과 자만에 빠뜨리게 했다.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나보다 못하다고 보이는 사람들을 속으로 무시하기도 했다. 열등감과 자존감은 상대적인가?란 질문을 그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자존감은 어디에 있든지 간에 견고해야 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 뒷담화 외의 열등감 증상들은 대체로 속으로의 생각에 그쳤기 때문에 타인에게 불편함을 크게 주진 않았을 것으로 사료되지만, 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한 사람들의 의도를 왜곡한 것에 대해서는 시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적어두고 보니 아무리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했음에도 결국에는 속이 썩어 문드러진 인간쓰레기였나 싶다.

 

 

지금 나의 자존감이 높다고 말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는 없으나, 확실하게 상담 이전과 비교하면 나아진 것이 맞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분명 아직도 내가 극복하고 나아가야 할 지점들은 수없이 많다. 이어서 어떻게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채우고자 했는지를 적어보고자 하는데 분량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다음 포스팅으로 넘겨보겠다. 

 

 

2024.04.04 - [대학원생의 고찰] - 대학원생의 고찰 (2) | 열등감과 자존감은 상대적이다 ② (자존감 상승과 회복에 도움되는 방법)

 

대학원생의 고찰 (2) | 열등감과 자존감은 상대적이다 ② (자존감 상승과 회복에 도움되는 방법)

지난번 포스팅에서 열등감과 자존감을 작성하게 된 동기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 열등감의 형태를 살펴보았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이전 포스팅을 먼저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이번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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