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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과 자퇴를 곁들인, 두 번의 대학원을 거치며 (feat. 석사생 본격 심야 다이어리)

knownlearn 2024. 4. 20. 21:09

 

지난 포스팅에서 석사과정 당시 작성했던 글을 공유했었다. 이번 포스팅에서도 석사과정생일 때의 신분을 유지하되, 그 당시에 돌이켜 생각해보았던 과거를 적어보고자 한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휴학과 자퇴를 모두 경험하는 바람에 두 번의 석사과정을 시작했었다. 물론 한 곳을 자퇴하고 나서 다른 곳으로 옮겼기 때문에 석사학위는 한 개이지만 두 학교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했었더랬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공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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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열등감 발현 모습에 대한 이전 포스팅을 읽었다면 익히 알 것이다. 필자가 다양한 측면에서 열등감으로 야기된 문제를 겪고 있었음을 말이다. 대학원생이었던 만큼 그중에서도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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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과 자퇴를 곁들인, 두 번의 대학원을 거치며
[이미지 출처: pixabay]

 

 

 

 

제1의 대학원

 

나는 무엇이 되고자 대학원에 갔을까? 이유를 알 수가 없네. 학부 전공부터 사회과학계열이었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전공분야를 살려 취직할 수 있는 곳들이 많지 않았다. 당장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하더라도 평생 그 자리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은 포지션과 업무 때문에 생각은 많아져만 갔다.

 

교수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왜냐고? 나 스스로도 배우기도 급급한 상황에서 후학 양성의 동기를 찾을 수 없었다. 누군가를 가르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생각이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나는 나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을 것이므로 교수나 강사의 꿈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교수나 학자라는 이름은 너무 거대하게 다가온다. 학자의 모습을 떠올리자면, 머리가 하얗게 세고 몸 담고 있는 분야의 모든 지식과 최신 트렌드를 자연스레 읊는 노교수가 생각날 뿐이다. 내가 이 모습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기에 나 자신과 감히 동일시할 수 없었다.

 

나는 전공분야와 관련된 기관과 단체에서 행정업무를 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학부를 갓 졸업한 그 당시에는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에 관련기관에서 간사로 일하게 되었다. 전공과 관련된 단체이기는 했지만, 엄연히 말해서 내 관심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곳이었다. 첫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대학원에도 지원하게 되었다. 학부 전공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학과는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배운다는 설렘이 가득했지만, 대학원이라는 곳은 교수님을 통해 지식을 얻는 곳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미 학부에서 여러 수업을 들으며 탄탄히 쌓아온 지식과 사회에서 쌓은 경험을 활용하여 열심히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곳이 대학원이었다.

 

'발제'라는 행위를 통해서 하나의 개인이 소화한 리딩을 함축해서 발표한다. 발제는 3시간이라는 수업시간 전체를 꽉 채우기도 했지만, 대개 3시간 중 80-90% 이상의 시간을 차지하며 교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압도해버렸다. 한 학기에 들었던 3개의 수업 중 하나의 수업은 이상하리만치 납득이 가지 않았다. 방송 출연 외 여러 활동으로 바쁘신 교수님께서는 사전제작 비디오를 활용하여 온라인 수업을 듣게 했는데 상당한 비중으로 유튜브 혹은 공영방송에서 가져온 다큐멘터리 영상들이 재생되는 것이 아닌가.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몇 백만 원이라는 비싼 돈을 내면서 수업이라고 듣고 있자니 현타가 오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학부에서 배우지 못한 궁금증들을 해결하고 싶었던 어린 청년이었다. 학부와 다른 전공이었으므로 많은 것을 알고 있지도 않았다. 교수님의 고견을 충분히 들을 수도 없고, 촉박한 수업시간에 제대로 질의응답할 수 없는 학교의 시스템이 참으로 경이로웠다. 스스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도 감을 잡지 못하고 파악하지도 안내도 받지 못한 채, 첫 학기를 보낸 후 휴학을 결정했다. 이 대학원에서는 첫 학기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반년 후 자퇴서를 내게 된다.

 

 

 

 

 

긍정적 자퇴?

 

나의 첫 대학원을 이렇게 떠나보냈다.

정해진 루트에서 벗어난 내 삶은 불안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어릴 때는 정규 교육이 주는 안정감을 몰랐다. 국가에서 하라는 대로 정해진 수순을 밟아 차례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는 당연하게 주어진 학교에서의 소속감에 감사할 줄 몰랐다. 그땐 어렸으니까. 그리고 공부는 늘 하기 싫고, 학교는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는 곳이었기 때문에 소속감이 되려 없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때는 바보가 아니었지만, 지금에서 바라보는 그때의 나는 바보였다. 정해진대로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안정적인 것인지를 당시에는 알 수 없었겠지.

 

당연히 100%의 확률로 정해진대로 살아가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머리로도 그리고 가슴으로도 알고 있다. 문제는 나 자신이 안정감이 없는 불확실성을 즐기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무엇을 하든 결과가 보장되어 있는 안정추구형이라는 사실은 익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시도하며 그간의 인생을 살아왔다. ‘안정 추구 vs 도전 강박’의 구도 속에서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지내왔으나, 내 삶에서는 없었으면 했던 휴학과 자퇴를 거치며 안정 추구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지게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선택하긴 했지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을 바라보며 불안은 나를 감싸 쥐었다. 내가 대학원에 왜 오게 되었냐고? 아직도 답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서 대학원에 온 것일까, 지금에서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데. 학부를 졸업한 나는, 첫 직장을 몇 달 만에 그만두고 첫 대학원을 한 학기만에 휴학하고 이어서 자퇴서까지 내 손으로 냈다. 사회에 갓 나온 내가 인생의 불확실이라는 변수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리고 순진하고 순수했다. 확실한 계획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실행해왔고 실패를 자주 경험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막상 생각과는 다른 대학원의 모습은 내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없게 만들었고 여기에서 파생된 '중도 포기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니 더더욱 익숙지가 않았다.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쉽게 이겨낼 것이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은 약해져 갔다.

 

처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맞닥뜨린 순간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저 나는 좌절에 취약한 사람이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리다고 설명해도 되고 순진해서라고 설명해도 되겠다. 그때는 처음이라 몰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다행인 내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예측 불가능한 변수에 타격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타격을 당할 때의 수면상태, 기분, 배고픔 등의 여러 요인에 따라 사고의 폭이 넘나드는 것 같긴 하다.

 

 

 

 

 

제 2의 대학원

 

중도 포기자였던 나는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퇴사를 하자마자 즉각 다시 취업의 문을 열었다. 돈은 벌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학부 전공과 무관한 포지션은 추호도 싫었다. 나는 내 전공을 살리고 싶었다. 다행히도 그 시점에서 공고가 열려있던 국책연구기관에 근무하게 된다. 전공과 관련된 연구기관이었으니, 어쩌면 내가 대학원에 오게 된 이유는 여기에서의 생활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곳에서의 박사님들은 대학원 생활을 적극 지지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박사님들은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치신 분들이니 이미 대학원을 경험하셨고, 박사 졸업 이후 국책연구기관에서 안정적으로 봉급 받으시며 연구를 하고 계시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루트라고 말씀하실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한다. 게다가 나는 이미 (한 학기만 다니다가 자퇴했지만) 대학원에 지원했을 정도로 연구직에 지속적인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나와 박사님들과의 조합은 대학원을 선택함에 있어 '시너지'라고 밖에 부를 수 없다.

 

계약이 채 끝나기 전에 두 번째 대학원에 지원했다. 이 학교 또한, 내 학부 전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과가 없었으므로 관심분야의 범주를 넓힌 학과에 지원했다. 지원 전에 미리 지도교수님으로 생각을 해둔 분께 이메일로 사전 연락을 드렸고, 염두에 둔 연구주제를 이 학교에서 진행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여쭈었다. 교수님께 연구가 가능할 것 같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었고, 그렇게 지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 통보를 받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졸업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논문이 다 준비되면서 졸업을 하게 되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사실 디펜스를 하기 전에는 우리 대학원에 졸업유예 제도가 있는 줄 알았다(수료 유예 제도가 안내된 게시물을 졸업유예 제도로 잘못 읽고 그렇게 기억해 온 탓이다 + 안일하게 디펜스 할 때까지도 졸업유예 제도 여부를 재확인할 생각을 안 한 탓이다). 그래서 졸업 이후 진로가 결정되지 않았을 때, 여차하면 졸업을 미루려고 했는데 결국 그 제도가 없다는 걸 늦게 알아버렸다. 예상치 못하게 졸업을 하게 되었다.

 

석사학위의 이점을 아직은 모르겠다. 언제가 되면 알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석사학위를 취득한 자로서, 석사학위의 이점을 모르겠다고 말하니 무언가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말 모르겠는걸. 석사학위를 얻음으로써 추후 괜찮은 자리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서야 석사학위의 이점을 적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미취업 상태에서는 그 어떤 좋은 말도 해줄 수가 없는 나의 석사학위에게 너무나 미안하지만, 미안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지만, 그래도 정말 석사학위로 얻은 게 아직 없어서 솔직하게 긍정적으로 적어낼 수 없다.

 

 

 

 

 

졸업인데 감흥이 없다

 

오늘은 졸업식이 있었다. 대면으로 이루어졌지만 나는 참석하지 않았고, 미리 행정실에서 지난주에 학위기를 수령했다. 친한 동기들은 이미 졸업했고 나는 상대적으로 늦게 졸업하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도 많이 없었을 터였다. 지도교수님께서 오시는 줄 모르고 기숙사에 넋 놓고 있다가 오셨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학위복을 입고 지도교수님과 사진을 찍을 기회는 더 이상 없어졌기에 아쉬웠다. 교수님을 다음에 만나 뵐 때 학위기를 가져가서 사진을 찍으리라 다짐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너무 흐렸다. 비도 왔고 추웠다. 1시간이 걸리는 학교에 광역버스를 타고 가려니 속도 좋지 않았고 버스도 금방 오지 않았다. 차고지에서 모습을 감춘 버스를 10여 분간 기다리다가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드러누워 생각했다. - 나는 오늘 졸업식을 가지 않은 것에 대해 크게 아쉽지는 않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면 나는 더 이상 학교에 소속되지 않은 신분이 되고, 졸업생으로 사회에 나가야만 한다. - 이번 학기 동안 졸업논문을 쓰고 디펜스를 통과하면서 늘 생각해왔다.

 

석사과정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3년간 몸 담았던 학교에 더 이상 소속되지 않는 느낌이 달갑지 않았다. 학교가 아니더라도, 나를 나타낼 수 있는 어딘가에 소속되었다가 나가게 되었을 때마다 너무나도 아쉬웠다. 소속감뿐만 아니라 여타 이유들로 졸업을 유예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도 그들 속에 있고 싶었지만, 내가 다닌 대학원에는 졸업유예제도가 없다. 이제 내일이 오면, 나는 온전한 졸업생으로서 다음 여정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졸업하기 전부터 졸업논문을 완성하자마자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불안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던 때가 있었느냐 만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자란 나는 늘 돈에 고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읍, 면, 리가 익숙한 고향을 벗어나 서울을 처음 경험한 20살 때부터 나와 다른 이들과의 격차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며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번다는 행위가 나에게 우선순위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런 내가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선택한 학문의 길이 나를 배곯게 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다. 이 길이 힘들어진다면, 나는 결국 나만을 위해서 돈을 벌게 될 것 같아서다.

 

20대 초반부터 말도 안 되는 경제적 제약을 나 스스로에게 부과하며 돈에 억눌린 삶을 몇 년간 유지하며 살았고, 20대 후반이 되어서 석사과정에 들어와 대학원생의 신분으로 연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서는 상대를 위해서도 아끼지 않는 생활도 지속해보았다. 지금은 먹는 것에서 만큼은 부족함이 없도록 지내며 조교, 연구보조 등으로 얻는 수입으로 적당히 적금을 넣으며 지낸다. 그러니까 모아둔 돈이 다 떨어지기 전에는 분명 취업의 길을 뚫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 요즘 정말 많이 생각하는 말 중 하나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속담보다 더 직관적이고 간결해서 자주 되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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