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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박사과정) 입시 면접을 앞두고 펑펑 울고 난 뒤, 최종 불합격을 바란 어제

knownlearn 2024. 5. 4. 17:17

내가 지원한 학과는 서류전형과 면접전형 외에 자체적으로 추가 시험을 본다. 어제는 면접 전형이 있기 전 자체시험을 본 날이었고, 그날은 최근의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하게 기록된다. 차라리 불합격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기에 스스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울고 있는 소녀
[이미지 출처: pixabay]

 

 

 

어떻게 해도 부족함을 채울 수 없다

 

평소에 거의 우울하지 않다고 봐도 무방한 나에게 우울함이 찾아온 이유는 바로 그 자체시험이었다. 굳이 사회과학계열의 학과를 전공하지 않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학과에서 영어로 작성된 논문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배우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이화여대, 서강대, 가톨릭대 등 여러 대학교에서 대학원 입학 시 영어번역능력을 구술이나 필기고사를 통해 평가한다. (내가 지원한 학교도 이중 하나이지만 어디인지, 언제 지원했는지는 공개하지는 않겠다.)

 

내가 지원한 학과에서도 면접 전형 이전에 자체적인 영어번역 시험을 진행했다. 그리고 나는 개같이 망했다. 내 수준에서 어려운 어휘들이 꽤 있었고, 시간까지 부족했다. 어떻게 해도 변명을 내놓는 것밖에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시행되어 온 자체시험의 시스템에 내가 도전해서 바꾸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게 부족했던 부분들을 적고 반성해보고자 했다. 

 

 

 

다른 전공

 

 

 

우선 박사과정으로 지원하는 학과는 내가 학사 또는 석사 학위에 적힌 전공과 다르다. 그렇다고 아예 쌩판 관련이 없는 학과인 것은 아니고, 학부 때 배운 수십 개의 과목 중 딱 하나의 과목과 연관이 있는 학과라고 할 수 있다. 학부 때의 전공과 석사과정 때의 전공도 조금의 연관성이 있으나 같지는 않았으므로 거진 각기 다른 학과를 전공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학부시절에는 넓게 배웠으니 100개의 개념들을 배웠다고 한다면 석사학위는 학부시절에 배운 100개의 개념들 중 대략 30-50개 정도를 활용할 수 있었고, 박사과정에서 배우고자 하는 전공은 학부시절에 배운 100개의 개념들 중 10개 이내 정도를 활용할 수 있는 정도로 각각 연관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학부나 석사 때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분야에 대한 영어지문을 마주쳤을 때, 면역력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나서(대학원 입시에서는 정말 아니다 싶은 망나니가 아니라면 대체로 서류전형은 합격시켜 주는 편이다, 서류전형 통과는 그다지 중요한 관문이 아니다.) 1-2주도 되지 않는 시간이 있었으나, 그 기간동안 특정 분야와 관련된 모든 어휘들을 마스터하기란 불가능했던 시간이었다. 한국어로 대답하라고 한다면, 어떻게든 답할 텐데 영어는 까막눈 수준이다. 평소라면 성격이 급한 편이라 일을 빠르게 처리하려고 하는데, 모르는 어휘가 많으니 다음 문장으로 나아갈 수 없어 시간이 촉박했던 것도 복합적인 문제였다. 

 

오로지 입시에만 하루종일 매달린 것도 아니었고, 입시준비와 별개로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프로젝트 등이 있었기에 하루에 몇시간이라도 내는 건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밤을 지새우기에는 성치 않은 체력으로 다음날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가 없었고, 심리적인 압박으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악순환의 총체적 난국이라고나 할까. 도무지 지금 현재의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물리적 법칙 같은 것이었다. 

 

 

 

 

일회성 시험에 기반한 판단의 효용가치

 

 

 

그러다 든 생각은, 왜 영어번역시험을 보느냐는 것이었다. 이미 서류전형 과정에서 공인영어시험 성적을 제출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에 대한 학교 측의 입장을 예상해 보자면, "영어로 작성된 논문이 수업의 주를 이룰 정도로 파이도 크고, 그에 따라 논문을 이해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높은 공인영어시험 성적을 가지고 있어도 실제로 영어논문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학생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 정도가 아닐까 한다. 나도 전공불문하고 그간 높은 영어성적이 훌륭한 독해능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1

 

그러나 내가 의아했던 점은 영어번역시험을 입시전형의 최종단계에서 합격의 당락을 가르는 핵심적인 근거로 활용하는 면접위원의 행태이다. '대학원생의 고찰' 카테고리에 올린 나의 앞선 글들에 내가 이미 석사학위를 따기 위해 두 개의 대학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와 함께 실제로 다니지는 않았어도 지원했다가 떨어진 학교들과 직간접적으로 주변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종합해 보면, 학교에서 제공하는 입시요강을 보면, 합격자 선발기준에 참고자료로만 확인한다는 안내문이 적시되어 있다. 즉 자체시험에 할당된 배점이 없다.

 

그런데 면접에서 다른 질문은 일절 주지도 않고 다짜고짜 영어시험이 어려웠냐는 질문 하나만 던진 면접위원은 이미 면접도 제대로 보기 전에 나를 영어시험으로만 평가지어버렸다는 인상을 주게 만들었다. 면접이면 질문을 던져서 지원자를 평가해야 하는 것인데, 영어시험을 망쳤으니 더 물을 가치도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서류전형에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물을 가치가 없었던 것인지, 어느 쪽이 우선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 5분도 안 걸린 면접을 본 학교에서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었다. 이게 과연 나만의 경험일지는 미지수이다. 

 

 

 

 

2

 

다음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일회적으로 이루어지는 영어번역시험의 효용이었다. 사실 영어번역시험의 효용이 흔들리면 선발에 대한 판단이 흔들리게 되므로, 조심스럽기는 하다. 또한, 시험이라는 것이 여러 번 치고서 평균을 내는 방식이 아니라면야, 더욱 한 방에 당락이 갈리게 되는 건 당연하기도 하기에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말이다. 독해능력에서 요구되는 것이 어휘만이 아닐 것인데 그렇다면 최소한 사전반입은 허용해주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글의 주제와 구성을 분석하고, 어휘와 어휘를 연결지어 통합적 문맥을 파악하는 등의 능력은 단순히 많은 어휘를 알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따라오는 능력이 아닐 테다. 시험시간도 그리 길지 않은 편인데, 사전반입이 허가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지 않은가. 

 

사전반입을 허가하면 시험감독으로 들어올 조교와 학교 지원들이 행정력이 더 소모가 될까봐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어휘를 완벽하게 다 숙지하고 있으라는 의미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런데 영어권 국가의 원어민이 아닌 면접위원들은 과연 본인 전공분야와 연관된 어휘와 그리고, 전공과 연관되지 않는 고급어휘까지 모두 마스터하고 있어서 모든 영어지문을 완벽하게 독해할 수 있는가? 얼마나 완벽한 토종한국인 교수가 존재할까? 영어에도 완벽하지 않은 면접위원이 채점을 한다는 것도 부수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이렇게 공정성이 위배될 가능성이 높은 시험을 두고서 참고자료로만 활용을 한다면서, 면접에서 자체시험이 어려웠냐는 질문 하나만 던지는 행위를 어떻게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영어논문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시험을 망친 나를 떨어뜨린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누가 영어논문을 읽을 때, 모르는 어휘를 안 찾고 넘어가겠나. 어휘를 모르면 문장 해석이 안 되는데 당연히 찾아보지 않겠냔 말이다. 발제를 하고 논문을 써야 하는데, 이해가 안 된 상태로 영어독해를 할 것이라 간주하는 것도 아니고... 번역시험의 취지와 운영방식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와닿지가 않는다. 실질적으로 영어논문을 읽을 때의 조건을 갖추고 시험을 봤다면 조금이라도 덜 억울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제의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가지고서 시험을 보기 직전에도 그리고 직후에도 착잡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혼자 있는 방에 책상 앞에 앉으면 서러워서 눈물이 흘렀고, 잠들기 전에는 하루간 있었던 일들이 축약되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자 엉엉 소리 내어 울기까지 했다. 최근 몇 년 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이렇게 감정적으로 무너지도록 힘들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대학원이라는 곳은, 내가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절차를 통과해야만 입학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설사 내가 대학원에 입학한다고 하더라도 그곳의 시스템과 교수님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래서 '차라리 불합격하는 것도 정말 좋겠다,' 란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아직 앞으로 면접전형이 남아있지만 준비할 의욕 따위는 없다. 그나마 펑펑 울어재끼던 어제의 우울감은 잠을 자고 나니 사라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저 지도교수님을 생각해서라도 기본만 하고 오자는 생각이 강하다. 과연 이번 학교에서도 내가 망해버린 영어번역시험을 언급할 것인지, 최종 불합격일지도 궁금해진다. 면접을 마치고 글을 쓸 생각이 들면 후기를 작성하러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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